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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 01:31 Trackback 0 Comment 0

 
무라카미 류(村上龍)



지난주 금요일, 항구 도시 요코하마(横浜)에 있는 우리 집을 나와, 오후 3시 전에 항상 이용하고 있는 신주쿠(新宿)의 호텔에 체크인 했다. 평소에도 나는 이곳에 주 3~4일 체류하며 집필 활동과 자료 수집과 기타 등등의 일을 하고 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지진이 일어났다. 잔해물에 깔릴거라고 판단해, 순간적으로 물과 쿠키, 브랜디 병을 집어들고 튼튼한 테이블 밑에 뛰어들어 웅크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층 30층 건물에 깔리면 브랜디를 즐길만한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행동에 의해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금방 관내방송으로 지진경보가 울려퍼졌다. '이 호텔은 최강도의 내신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건물이 손상되는 일은 없습니다. 호텔을 나가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방송이, 몇번이고 울려퍼졌다. 처음엔 나도 다소 회의적이었다. 호텔 측에서 그저 손님을 안심시키려고 하는것 아니냐고.

그러나, 이때 나는 직감적으로 이 지진에 대한 근본적인 스탠스를 정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나보다도 정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과 기관으로부터의 정보를 신뢰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건물은 붕괴하지 않는다고 믿자, 고. 그리고, 건물은 붕괴하지 않았다.

일본인은 원래 "집단"의 룰을 신뢰하여, 역경에 대해서는 재빠르게 협력 체제를 조직하는 일에 뛰어나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것이 지금 증명되고 있다. 용맹과감한 부흥 및 구조활동은 쉴 틈 없이 계속되어, 약탈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집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우리는 이기적이다. 마치 체제에 반역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리고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쌀이나 빵, 물과 같은 필수품이 수퍼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주유소는 고갈 상태다. 품귀현상에의 패닉이 일시적인 사재기를 부추기고 있다. 집단에의 충성심은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최대의 불안은 후쿠시마(福島)의 원전이다. 정보는 혼란스럽고 상이(相違)하다. 스리마일 섬의 사고 보다는 나쁜 상태지만 체르노빌보다는 낫다는 설도 있는가 하면, 방사선 요오드를 포함한 바람이 도쿄에 날아오고 있기 때문에 옥내로 대피하여 요소를 포함한 해조류를 먹으면 방사능의 흡수를 막을 수 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친구는 서쪽으로 도망치라고 충고해왔다.

도쿄를 떠나있는 사람은 많지만, 남아있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일이 있어서'라고 한다. '친구도 있고 애완동물도 있다', 그 외에도 '체르노빌과 같은 괴멸상태가 되어도, 후쿠시마는 도쿄와 170마일이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도쿄보다 서쪽에 있는 큐슈(九州)에 있지만, 나는 그곳으로 피난할 생각은 없다. 가족과 친구,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여기에 남고 싶다. 남아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그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신주쿠의 호텔방에서 결심했던 스탠스를 지킬 생각이다. 나보다도 전문성 높은 출처로부터 발표되는 지식을, 특히 인터넷으로 읽은 과학자나 의사, 기술자의 정보를 믿는다. 그들의 의견과 분석은 뉴스에서는 별로 거론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정보는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하고, 그 어느것 보다도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10년전에 쓴 소설에서는 중학생에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나라에는 무엇이든지 있습니다. 정말로 온갖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만이 없습니다'라고.

지금은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피난처에서는 식료, 물, 약품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도쿄도 물건과 전력이 부족해지고 있다. 생활 그 자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정부와 전력 회사는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일본이 얻은 것은, 희망이다. 대지진과 쓰나미는, 많은 생명과 자원을 뿌리부터 앗아 갔다. 그러나, 부(富)에 마음을 앗겨간 우리들 안에서 희망의 씨앗을 싹 틔웠다. 그렇기에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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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무라카미 류
2011.03.20 05:23 Trackback 0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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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2:46 Trackback 0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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